Interior Project/Residential

팔레르모의 빛을 담다 / 디데아

ⓒ Paolo Riolzi

 

Palermo Underground

 

이탈리아 팔레르모(Palermo) 도심의 한 건물 13층에는 도시와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펜트하우스가 자리한다. 건축사무소 디데아(Didea)는 기존 420㎡ 규모의 단일 주택을 새로운 소유주의 자녀들을 위한 여러 주거공간으로 분할하고 리노베이션했다. 그중 약 135㎡ 규모의 ‘팔레르모 언더그라운드(Palermo Underground)’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좋아하는 젊은 거주자를 위해 설계한 집이다. 뉴욕 로프트의 산업적인 분위기를 가져오되, 팔레르모의 풍경과 빛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도시를 향해 열린 집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었다. 창문과 말굽 모양의 테라스에서는 팔레르모의 주요 가로인 비아 리베르타(Via Libertà)를 비롯해 도시의 건물들이 겹쳐진 풍경이 펼쳐진다. 건물 사이로 몬테 펠레그리노(Monte Pellegrino)가 모습을 드러내고, 시선을 더 멀리 옮기면 항구의 크레인과 카포 자페라노(Capo Zafferano)까지 이어진다.

설계팀은 이러한 조망을 실내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거실과 침실 등 주요 생활 공간을 도시와 바다가 보이는 방향에 배치하고, 설비와 보조 기능은 안뜰과 맞닿은 뒤쪽에 모았다. 테라스는 실내 생활의 연장선이 되어 외부 풍경과 자연광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빛과 시선이 이어지는 공간

실내는 고정된 벽으로 공간을 나누기보다 필요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경계를 활용했다. 거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계획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을 배치해 산업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주방 옆 식당은 상황에 따라 서재나 휴식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두 공간 사이에는 가느다란 격자 프레임으로 구성한 대형 유리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문을 닫으면 독립적인 공간이 되지만 유리를 통해 빛과 시선이 이어지기 때문에 공간 전체의 개방감은 유지된다.

이처럼 투명한 경계와 가변적인 공간 구성을 활용해 실내 곳곳에서 빛과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벽이 수납과 동선이 되는 방식

평면 구성에서도 기존 아파트의 일반적인 방식을 벗어나고자 했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많은 아파트가 방과 복도, 칸막이벽으로 공간을 세분화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벽과 수납을 하나의 입체적인 구성 요소로 다루었다.

설계팀은 평면에 일정한 격자 체계를 적용해 공간의 비례와 치수, 벽체의 위치를 정리했다. 이 격자를 바탕으로 채워진 부분에는 설비와 수납 기능을 넣고, 비워진 부분에는 통로와 시선이 이어지는 공간, 생활 영역을 배치했다.

벽은 방을 구분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개구부와 수납, 생활 기능을 통합하는 건축적 장치로 활용된다. 벽면과 같은 높이로 제작한 맞춤 가구에는 세탁실과 신발장, 홈바, 옷장, 설비 수납공간 등이 들어간다. 손잡이 없이 눌러 여는 방식을 적용해 표면을 간결하게 정리했으며, 기존 기둥과 구조체의 불규칙한 부분도 가구 안으로 흡수했다.

이러한 수납 구성은 현대적인 목재 벽장식인 부아즈리(boiserie)처럼 실내 벽면에 깊이와 질서를 부여한다. 복도 역시 이동을 위한 여유 공간이 아니라 여러 기능이 이어지는 생활 공간의 일부가 된다.

현관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닫힌 전실 대신 안뜰을 향한 큰 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거실까지 동선이 점진적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평면을 구성하는 격자 체계는 공간의 비례와 개구부의 위치를 정리하는 동시에 비표준 치수의 사용을 줄여 시공 효율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산업적인 재료와 따뜻한 색채

집의 분위기는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기하학적 구성과 재료의 질감에서 드러난다. 노출된 기둥과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 어두운 색상의 창틀은 절제된 산업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여기에 나뭇결이 뚜렷한 목재와 따뜻한 색조의 미장 마감, 자연광을 더해 주거공간 특유의 편안함을 살렸다.

벽에는 표면이 미세하게 불규칙한 미장재를 적용했다. 균일한 흰색 도장 대신 질감이 있는 마감을 선택해 강한 자연광이 실내에서 한층 부드럽게 느껴지도록 했다. 벽과 천장에는 비슷한 색조를 유지하면서도 재료의 차이를 두어 별도의 색채 대비 없이 공간의 높이와 경계, 면의 변화를 드러냈다.

창틀과 조명기구, 매입형 걸레받이에는 검은색을 사용했다. 밝고 따뜻한 마감 사이로 이어지는 검은 선은 공간의 윤곽과 기하학적 구성을 강조한다.

천장에는 기존 지붕의 경사를 따라 사선으로 절개한 형태를 적용했다. 기존 건물의 제약 조건이었던 경사진 지붕을 새로운 공간 구성의 기준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 사선은 집 안 곳곳으로 이어지며 공간 전체에 일관된 질서를 만든다.

기본적인 재료와 색채는 절제했지만 가구와 소품에는 보다 강렬한 색을 더했다. 부드러운 녹색과 짙은 청록색, 진홍색, 노란색 등이 공간에 개성을 부여한다. 가구와 직물의 선정에는 건축주 가족의 일원인 로베르타 파야(Roberta Faja)가 직접 참여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거주자들의 서로 다른 취향과 설계사무소의 디자인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이번 프로젝트에서 지속가능성은 에너지 성능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공간을 만드는 문제와 연결된다. 설계팀은 유행을 따르는 디자인보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공간 구성과 재료의 품질을 중요하게 보았다.

실내에는 통기성과 질감을 갖춘 수경성 석회 미장재를 적용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저온 온수 순환 방식의 바닥 복사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간의 가변성 역시 지속가능성을 위한 설계 요소다. 수납과 설비 기능을 벽체와 붙박이 가구에 통합해 주요 생활 공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거주자의 취향이나 생활 방식이 달라지더라도 공간 전체를 다시 구성하지 않고 새로운 용도를 수용할 수 있다.

팔레르모 언더그라운드는 기존 펜트하우스의 조망과 구조적 특징을 활용하면서 현대적인 생활에 맞는 공간으로 재구성한 프로젝트다. 산업적인 재료와 따뜻한 마감, 정교한 수납 구성, 유연한 공간 활용을 결합해 뉴욕 로프트의 분위기를 팔레르모의 도시적 맥락 안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 Paolo Riol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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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디데아(Didea)
위치 이탈리아, 팔레르모
용도 주거시설
연면적 약 135㎡(해당 주택 면적)
준공 2023
참여건축가 Nicola Andò, Giuseppe De Lisi
주요재료 스테인리스 스틸, 목재, 오크 마루, 수경성 석회 미장, 레진 마감재, 유리
사진작가 Paolo Riol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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